20191103 시련의 축복을 감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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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련의 축복을 감사하라

(사무엘 하 5:1-5)

 

오늘 113일 가을이 깊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 가을은 무서운 계절입니다. 왜냐 하면 봄에 뿌렸던 씨가 열매를 맺는 계절이기 때문입니다. 씨를 뿌릴 때도 무슨 씨를 뿌렸는지 잘 알 수 없는 때가 있습니다. 더군다나 여름에는 무슨 씨를 뿌렸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가을이면 그 씨가 열매를 맺는데 , 이 씨를 뿌렸구나.’ 하고 알게 됩니다. 영락없습니다. 뿌린 대로 거두게 됩니다. 가을은 참 무서운 계절입니다. 내가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 내내 가꾼 결과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 내가 무슨 일을 했는지 내가 한 일의 결과가 그대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인과응보입니다. 사필귀정입니다. 이것이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자연의 진리요 하나님께서 세우신 법칙입니다.

 

우리가 한 말, 우리가 한 일이 언젠가는 다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여기 앉아 있는 우리 모두 백년 안에 무슨 말을 하고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것이 열매로서 사람들 앞에, 하나님 앞에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 삶에 여러 가지 일들이 있습니다. 좋은 일도 있고 나쁜 일도 있고 성공도 있고 실패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든 일이 다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되돌아보면 오늘 그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뭔가 원인이 있습니다. 내가 뭔가 한 일이 있습니다. 그 결과로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우리가 때로는 실패도 하고 시련도 겪고 부끄러운 일도 겪으며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 가만히 생각해보면 다 뿌린 대로 거둔 것입니다. 그냥 저절로 나에게 다가온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가다보면 내가 뿌린 씨, 내가 한 일의 결과가 불쑥불쑥 나타납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생각해보면 예전에 내가 이런 일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조심해서 살아야 합니다. 인생이 무서운 줄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것들 말고 하나님이 하시는 일 가운데 인과응보 말고 뿌려서 거둔 것이 아닌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것은 정말로 억울하다, 나와 관계없는 시련과 아픔이 있는 것 내가 과거에 뿌린 씨가 아니다,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다는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너무하다, 내가 이런 결과를 보려고 한 일이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이 도대체 왜 이러시는가 하는 억울한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욥이 그렇습니다. 욥이 말할 수 없는 고통과 시험을 당하고 시련을 당했습니다. 재산을 다 날리고 열 명의 자식이 몰살하고 본인도 병이 들고 부인도 떠났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욥이 그와 같은 고난을 당할 일을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런 씨를 뿌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욥에게 그런 엄청난 시련이 닥쳤습니다. 날벼락과 같은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런데 욥이 당한 고난과 시련이 우리들 가운데도 있습니다. 성경 가운데는 욥 말고도 그런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다윗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우리가 흔히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맘껏 누리고 산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다윗은 잠시 왕 노릇을 한 것이 아니라 40년 동안 했습니다. 그것도 당시 가장 강력한 통일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자세히 읽어보면 다윗은 고생을 많이 한 사람입니다. 시련과 환란이 그의 인생에 끊이지 않았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고 일이 년이 아니고 18년 동안이나 수많은 고생, 이유 없는 고생을 했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다윗이 이런 고난을 아픔을 당할 이유가 없는데 하나님께서 이런 고난과 고생을 당하면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다윗이 얼마나 고통이 심했는지 그가 쓴 시편 속에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시편51, 101, 131절에서 5, 161절 등 여러 곳에서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호소합니다. 자신의 억울한 심정을 외칩니다. 하나님 나에게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도대체 왜 나에게 멀리 계셔서 이렇게 고생을 시키십니까? 어떻게 이렇게 힘든 삶을 살게 하십니까? 어떻게 사람들에게 조롱당하고 핍박당하고 부끄럽게 하십니까? 어떻게 이러 실 수 있습니까? 나를 지켜주십시오. 성경에 보면 다윗이 애절하고 피눈물나는 기도를 드린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은 나중에는 40년 왕 노릇을 했지만 18년 동안 이런 피눈물 나는 처절하고 참담한 아픔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무엘 선지자를 양을 치고 있던 목동 다윗에게 보내셔서 왕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기름을 부으셔서 왕이 되게 하셨으니 금방 왕이 되게 하셔야 하는데 그러지 않으시고 18년 동안을 그냥 두셨습니다. 다윗이 기다리다가 지쳤을 것입니다. 한 해 두 해도 아니고 18년 동안을 기다리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기간 동안 왕이 될 준비를 해라, 인수위원회도 만들고, 같이 일할 사람도 뽑으라고 하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18년 동안 말할 수 없는 시련을 주셨습니다. 전직 대통령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대통령이 되고 가장 좋은 때가 대통령 당선되고 취임하기 직전까지라고 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에는 언론에서 보도하고, 줄줄이 사람들이 만나러 오고, 국민들의 존경도 받고 아주 재미가 좋다고 합니다. 그런데 정작 대통령 되면 고생만 하고 별로 좋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죽하면 어떤 대통령은 못해먹겠다고 했겠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대통령이 받는 것 같은 행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무지무지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차라리 다윗은 그 옛날 왕으로 임명되기 전 저 들판에서 목자로 양을 치던 때가 더 행복했을 것입니다.

 

시편 23편에 보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뉘이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행복한 삶을 살던 다윗에게 하나님께서 어느날 갑자기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왕으로 기름부음을 받게 하신 때부터 고생이 시작된 것입니다. 피할 수 없는 고생입니다. 성경에 다윗이 당한 고생에 대해 자세히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첫째 사무엘 선지자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다윗이 왕이 되게 되었다는 말을 들은 사울이 끈질기게 다윗을 죽이려고 따라다녔습니다. 왜 안 그렇겠습니까? 자신의 왕위을 빼앗기게 되었으니 내가 왕이 되기 위해서는 죽여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군대들을 데리고 끈질기게 쫓아다녔습니다. 최고의 권력자인 왕이 자신을 죽이려고 따라다니니 다윗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었습니다.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래서 다윗을 죽이려는 사울을 피해 다윗은 모조건 도망을 다닙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언제 자신을 죽이러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다리를 뻗고 잠이나 잘 수 있었겠습니까? 다윗은 하루 이틀도 아니고 일 년 이 년도 아니고 18년 동안이나 사울의 눈을 피해 여기저기 도망을 다녔습니다. 정처 없이 떠돌아 다녔습니다. 심지어는 다른 나라로 피난을 가기도 했습니다. 도망다니는 신세다 보니 굶주리고 허기지고 처량한 신세로 천대를 받고 조롱을 받았습니다.

 

사무엘 상 21장에 보면 사울이 죽이려고 하니까 다윗이 한때 거짓으로 미친 체하고 짐을 질질 흘렸다고 합니다. 상상이 가십니까? 가족들도 위험에 처해 이곳저곳으로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자신이 잘못한 것이니까 자신이 당하는 고난을 참을 수 있지만 죄 없는 가족이 당하는 고통은 견디기 힘든 일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아내 미갈도 빼앗기고 말았습니다. 다윗이 이렇게 극심한 고난을 당하면서 18년 동안 긴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이 도대체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일 이 년 뒤에 왕으로 세우시면 좋으련만 무슨 이유로 18년 동안 기다리게 하신 것일까요? 또 그렇다면 좀 편안하게 살면서 왕이 될 훈련을 시키시든지 유학을 보내시든지 할 것이지 왜 이렇게 붙잡아 놓으신 것일까요? 무엇 때문에 이런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시련을 당하게 하신 것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자리가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하셨습니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보통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다윗에게 이스라엘 왕이라는 축복을 주어야 할 텐데 이스라엘 왕이라는 큰 축복을 능히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스라엘도 어렵고, 다윗도 어렵고, 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큰 축복을 주기 전에 먼저 다윗을 그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다윗이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믿는 믿음을 가지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다윗에게 이스라엘의 왕이라는 큰 축복을 주실 것인데 그 축복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만들게 하기 위해서 다윗을 18년 동안 단련하시고 훈련하신 것입니다.

 

축복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옛말에 부지런히 일하면 먹고 사는데 지장 없지만 큰돈은 하늘이 내려주신다고 했습니다. 축복은 사람이 만들어 가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축복을 주시고 싶도록, 이 사람에게 축복을 주어야겠다고 마음먹으실 수 있도록 하나님에게 잘 보여야 합니다. 축복은 하늘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문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릇이 있어야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수 있고 그릇이 없으면 하나님께서 아무리 축복을 내려 주셔도 담을 수 없습니다. 담을 수 없으면 헛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내 것이 되려면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해서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축복을 주시는데 누구는 축복을 받고 누구는 축복을 받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그릇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고 그릇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축복을 주어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없으니 축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릇이 준비된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것이고 그릇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그릇은 어떻게 준비할 수 있는 것입니까? 고난과 고통을 통해서만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 수 있습니다. 옛날 어른들은 대장간에서 그릇을 만들려면 쇠를 펄펄끓여서 시뻘겋게 달궈서 망치로 치고 물에 담그고 이렇게 해서 만듭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은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런 혹독한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만들 수 있습니다. 고난이 없으면 절대로 축복의 그릇을 만들 수 없습니다. 불속에 들어가지 않으면 그릇을 만들 수 없듯이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큰 시련을 당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큰 그릇을 만들려면 큰 시련을 당하는 것입니다. 혹독한 시련을 당하는 분이 있습니까? 욥기에 보면 하나님의 시련을 통해서 정금같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귀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정금같은 좋은 재료로 만든 그릇이 있어야 합니다. 정금같은 좋은 그릇은 혹독한 시련으로만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환란과 고난은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기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는 우리들로 하여금 먼저 시련과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을 축복을 담는 그릇을 만들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우리에게 실패가 있고 좌절이 있고 시련이 있으면 하나님을 원망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빨리 이 실패와 시련이 그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우리가 이 시련을 통해서 큰 그릇 만들게 해주십시오 라고 해야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이 약해서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시험과 고통이 얼른 끝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서 얼른 끝나니까 그릇이 작은 것입니다. 하나님의 축복도 그만큼밖에 담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작금에 많은 시련을 겪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려고 그 축복을 온전히 담을 수 있는 그릇을 준비하게 하기 위해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교회에 하나님께서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다. 자칫 잘못하다가 이 그릇이 깨집니다. 우리에게 주셨던 하나님의 축복을 담았던 그릇이 깨지면 하나님께서 주셨던 축복이 다 없어지고 맙니다. 그래서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던 우리의 믿음의 그릇을 깨지 말고 잘 지키라는 것입니다. 잘 간수하라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시련을 주시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깊이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솔로몬의 부귀영화가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것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전무후무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받은 축복이 솔로몬 대에서 망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셨던 축복이 다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어리석기 짝이 없는 솔로몬이 자신의 자서전 같은 전도서에서 마지막 한 말이 헛되고 헛되니 다 헛되도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엄청난 축복을 다 잊어버리고 헛되다고 한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역사를 보면 솔로몬을 고생을 한 번도 하지 않았습니다. 고난이 없었고 시련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어떻게 지킬 수 있었겠습니까? 솔로몬 시련과 환란이 없었던 것이 인간적으로는 좋았을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축복을 다 잊어버리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혹시 우리 인생에 환란과 시험이 오면 기뻐하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들로 하여금 시련과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담는 그릇을 준비하게 하시는 신호이기 때문입니다. 시련과 환란을 통해서 우리가 믿음의 그릇을 준비하면 하나님께서 듬뿍 하늘의 축복을 여러분에게 채워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과 시험을 당할 때 하나님 앞에 감사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추수감사절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날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온갖 은혜에 감사를 드려야 합니다. 그 보다 더 우리 가운데 있었던 시험과 환란, 아니 지금 우리가 당하고 있는 혹독한 시험과 시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이런 시련과 환란을 통해서 하나님이 주신 축복을 잘 지킬 수 있는 믿음이 다시 깨우쳐지고, 이 시련과 환란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의 그릇을 잘 준비해서 앞으로 우리 교회를 향하여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크신 축복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시련의 기회, 환란의 기회를 주신 추수감사절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하나님께서 환란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여러분 모두가 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