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08 그리스도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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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의 삶

(빌립보서 4:4-7)

 

하나님 주시는 은혜가 여러분에게 가득하시기를 빕니다. 이 공간이 안식처요 위로의 공간이 되길 원합니다.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힘은, 우리가 무거운 발걸음이지만 한걸음 한걸음 뗄 수 있는 용기는, 가슴 무너지는 삶이긴 하지만 그래도 살아 내리라 희망하는 이유는 우리 주님 덕분인줄 믿습니다.

 

천사가 말했습니다. 우리가 오늘 함께 봉독한 복음서에 있는 말씀처럼 이 세상을 향한 아주 좋은 기쁨의 소식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주님만이 우리들의 기쁨이요 우리 주님만이 우리들의 즐거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일컬어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우리가 오늘 읽은 구약 시편의 말씀은 하나님을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 세상 살아가며 여러 가지 기뻐할 것 많이 있습니다. 어쩌면 육신적인 자랑거리가 기쁠 것이고, 내 눈이 바라보는 것들이 기쁠 것이고, 내 정욕이 행하는 바가 기쁨을 줄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그 기쁨이 우리 안에 가득하길 원합니다.

 

오늘 여러분들과 함께 우리가 무엇을 기뻐해야 될까에 대하여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무엇일까? 오늘 우리가 읽은 서신서, 빌립보서의 말씀은 우리에게 큰 깨달음을 줍니다. 우리가 빌립보서의 말씀을 읽기 전에 빌립보라는 지방에 대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빌립보라는 도시는 바울과 실라가 마케도니아 지방으로 떠나서 만났던 첫 번째 도시였습니다.

 

사실 이 도시에 대한 이해를 하시려면 세계사적인 배경이해가 조금 있어야 합니다. 헬라 대제국을 세운 알렉산더 대왕은 마케도니아 지역을 포함에서 유럽 전체에 막강한 힘을 갖게 되었습니다. 사실 헬라제국은 세계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하나의 부분을 차지하는데 왜냐하면 제국이 일으킨 문명이 헬레니즘문명이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어라는 언어에 기반을 두고 과학, 경제, 문학, 철학, 예술, 등등 전반적인 분야에서 엄청난 진전을 이뤄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철학자 소크라테스,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 이런 사람들이 그 시대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 대단한 헬라제국은 영원할 줄 알았던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에 영원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탈리아 반도에서 출현한 로마제국에 의해 헬라는 무너졌습니다.

 

이탈리아 반도에서 출현한 로마제국은 마케도니아를 중심으로 한 헬라제국 사람들, 특히 마케도니아 지역사람들을 우대해주었습니다. 이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엄청난 문화 문명을 배우고 싶어 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탈리아 반도의 형제들이라는 칭호를 내려주고 로마 시민권을 주었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을 일으켜 세우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던 장군들, 소위 말하는 군부는 퇴역하고 나면 마케도니아 지방에서 살기를 원했다고 합니다. 이탈리아반도도 지중해 연안에 있었기 때문에 온화한 기후를 가지고 있었지만 에게해 연안에 있었던 마케도니아는 굉장히 기후가 좋았거든요. 연세가 드실수록 기후가 지나치게 덥거나 춥거나 하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에 온화한 날씨의 마케도니아 지방을 선호했던 것입니다. 마케도니아 지방 가운데서도 제1도시는 데살로니가, 2번째 도시가 빌립보였습니다. 그 도시로 바울과 실라가 전도하러 간 것입니다.

 

그 도시에서 제일 처음 만난 사람이 귀신들려서 점치던 여종이었습니다. 그 행색이 불쌍해 보여서 바울이 그 여종을 주의 능력으로 고쳐주었습니다. 그런데 여종의 주인들이 자기들의 이문이 끊겼다고 생각하고 바울과 실라를 끌어다가 매질을 하고 옥에다 가뒀던 겁니다. 그 밤 빌립보 감옥에서 바울과 실라는 전심으로 기도하고 찬송했던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큰 성령의 역사를 이뤄냈는가 하면 옥문이 막 흔들리더니 파옥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된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갔을 것으로 생각하고 뒷감당이 안 되겠다 싶으니까 칼을 빼들고 자결하려했습니다. 그때 옥 안에 있던 바울이 크게 소리를 쳤습니다. “우리가 다 여기있으니까 당신 몸 함부로 해하지 마십시오.” 간수가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길로 바울과 실라를 자기 집으로 모시고 가서 맞은 데를 씻어주고 음식을 공궤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물었습니다.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셔야 합니다. 그리하면 당신과 당신 집이 구원을 얻게 될 것입니다.” 대답하자 그 길로 간수와 그의 가족이 다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 되었습니다.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 놀라운 일이 생기고 나서 빌립보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나중에 사도행전16장을 찬찬히 읽어보세요. 그러면 빌립보 교회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어떻게 개척되었는가 하는 것이 잘 나타나있습니다. 성서학자들에 의하면 이 빌립보교회의 개척 멤버들은 간수와 그의 가족들, 그리고 귀신들렸다 나음을 얻은 그 여종, 그리고 두아디라성 출신의 자주색깔 옷감장사였던 루디아라는 좋은 여성, 이런 사람들이 모여서 교회가 만들어진 것이라고 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찬송하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외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중에 여러분 사도행전 1617장 쭉 읽어보세요. 바울과 실라 일행이 빌립보를 떠나서 데살로니가를 거쳐서 아덴에까지 이릅니다. 오늘날의 아테네입니다. 사실 마케도니아는 그리스를 포함하는 지역이기 때문에 그리스의 아테네까지 이른 것입니다. 거기 가서 바울이 가만히 보니까 수많은 신전들이 있는데 거기에 알지 못하는 신분향단이 까지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아레오바고 라는 언덕에 올라가서 소리를 친 것입니다. “여러 부형들이여 다 내 이야기 한번 들어보십시오. 내가 보니까 여기 신전 가운데에는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분향단이 있던데 저는 여러분이 모르는 하나님에 대해서, 우리들의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나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수많은 신들이 있는 지역이 아무리 잘 살고, 아무리 문명이 대단하다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만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입니다. 왜냐하면 수많은 신들이 있는데 그건 다 우상입니다. 하나님만이 하나님입니다.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들의 하나님입니다. 그걸 말하니까 붙잡아다가 때린 것입니다. 교회 역사에 의하면 이렇게 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데려다가 재산을 몰수하고 죽이기까지 했던 겁니다. 그러니 예수님 믿는 것은 빌립보에서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도 마찬가지인데요. 사실 이 데살로니가라는 지역이 날씨가 온화하고, 살기가 좋은 도시였지만 예수님 믿기에는 녹녹치 않은 도시였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나중에 바울이 로마 감옥까지 흘러흘러 들어가 거기에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순교하게 됩니다. 여러분 사람이 어느 정도 지성이 있고 지능이 있다면 되어가는 상황에 대한 감각이 있습니다. 이쯤되면 바울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 알았습니다. 그 바울이 종이를 꺼내서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네 편을 썼는데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립보서 그리고 빌레몬이라는 사람에게 쓴 빌레몬서까지 이 네 편의 서신을 옥중서신이라고 합니다. 그중에 하나가 빌립보서에요. 그리고 그 이전에 데살로니가로 보낸 편지가 있는데 그게 데살로니가서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서와 빌립보서에서 말하는 공통된 한 가지 권면이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고 했습니다. 힘들지만, 예수 믿기 어렵지만, 세상이 여러분 그냥두지 않지만 기뻐해야 합니다. 감사하고 기도해야 한다고 전했던 것입니다.

 

빌립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빌립보서는 기쁨의 서신이라는 별칭이 있습니다. 여러분 내가 생각할 때마다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개척교회 멤버들이니까, 성도들이니까. 여러분의 기쁨, 그 기쁨의 소식을 내가 듣습니다. 그러면서 44절에서부터 7절까지 권면의 말씀을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라. 여러분 세상 살기가 어려우면 관용을 베풀기가 어려운 법입니다. 나 먹을 것도 없는데 나 살기도 힘든데 무슨 관용이냐고 생각하는 법이거든요. 그런데 바울은 여러분 관용을 모든 사람들이 알게 하십시오. 주께서 가까우십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권면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기쁨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바대로 내가 지금 처해있는 상황, 내가 처해있는 여건이 내 마음에 나타나는 상황에 대한 반응입니다. 인간 정서라는 것이 우리가 흔히 하는 생각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믿음의 고백이라고 말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스스로를 한번 돌아보세요. 요즘 삶을 살아가면서 많이 기뻐하세요? 즐거워하세요? 가족을 교우를 세상을, 직장에서 기뻐하고 계신지요? 그 기뻐하는 모습이 믿음을 측정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인하여 기뻐하십니까? 우리가 기쁘려면 좋은 일이 일어나야 합니다. 아팠던 몸도 회복되고 통장에 돈도 쌓이고 우리 애들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운 일 잘 풀리고 높은 자리 올라가면 기쁜 것 아닙니까?

 

그런데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을 기뻐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에 함몰되거나 매몰된 듯 내 생각을 다 빼앗겨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세상에서 역사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기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동행하신다는 것이 우리의 기쁨이 되어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날마다 즐거워하셔야 되요. 자 이제 옆에 있는 분들 바라보시면서 또 용기내어 눈을 크고 동그랗게 뜨시고 감탄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야~ 우와~ 내가 실상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지만 그 사람 안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우와 우리 주님의 은혜가 큽니다. 이야 하나님이 당신과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이끄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감탄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추석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부모님들 자식들 오면 또 언제 또 올까 생각하십니다. 어찌 이렇게 세월이 빨리 가느냐고 하십니다. 사실 40대 때는 시속 40km로 가고, 70때는 시속 70km로 가고 80대 때는 시속 80km로 간다고 합니다. 세월이 너무나도 빨라 눈 떴는데 벌써 자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여러분 내 옆에 있는 사람 바라보며, 세상 바라보며, 가족 바라보며 조금 모자라지만 조금 마음에 안 들지만 그래도 바라고 있어도 그립습니다. 애틋함이 여러분에게 가득하기 바랍니다. 왜 그런 애틋함을 가질 수 있는지 아세요? 우리 주님 덕분입니다. 우리 주님이 기쁨의 좋은 소식이니까, 하나님을 기뻐해야 하는 사람들이 우리들이니까, 세상 무엇을 바라보든 할렐루야 이야 우와~ 그렇게 살아갈 줄 아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게 우리들의 믿음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우리들의 믿음을 날마다 표현하며 살아야겠습니다. 내가 받은 이 풍성한 은혜를 누군가의 풍성함을 위해 나눠줄 줄 알아야겠습니다. 우리가 날마다 이야, 우와 하는 것은 우리 주님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이거든요. 나 같은 인생을 우리 주님이 사랑해주셨다, 그렇게 가족도 만나고 교우도 만나고 직장동료들도 만나고 세상도 만나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누군가에 대해서 우와 하잖아요? 그러면 나는 물론이거니와 내 옆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납니다.

 

혹시 여러분 정철이라는 분 아세요. 그 조선 시대 때 문인 가운데 시조 많이 쓰셨던 정철 선생 아닙니다. 영어 가르치셨던 그 정철 선생님도 아닙니다. 50대 작가 가운데 정철이라는 카피라이터가 있습니다. 광고 카피라이터이기 때문에 아주 반짝반짝하는 아이디어들이 이 사람 책에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람의 글 중에 인생이라는 제하의 글이 하나 있습니다. 인생 엄청난 주제입니다. 그러니까 뭘 골치가 아프게 수많은 글을 쓸 수 있을 텐데 이 사람 달랑 두 줄 적었더라고요.

 

친구가 있으세요.

그럼 됐습니다.

 

이 시의 여백에 우리가 친구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돈, 성공, 같은 것으로 문장을 만들어 써 보라는 메모가 있었습니다.

 

돈 좀 버셨습니까?

그럼 됐습니다.

 

이것도 마음에 들지 않는 말이거든요. 때로 우리가 돈을 벌기 위해 친구와 멀어지기도 합니다. 지금은 친구 필요 없어. 돈 벌어야지. 성공해야지. 그런 마음으로 인생을 여생을 보내신 분들은 인생의 황혼기, 후반부에 친구가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게 되실 것입니다. 친구가 있으세요? 그럼 됐습니다. 이게 납득이 된다는 것이거든요.

 

저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제일 살고 싶어하는 동네 도봉구 방학동 삽니다. 저희 동네는 날마다 방학입니다. 저희 동네 바로 옆에 쌍문동이 있는데 거기에 함석헌 기념관이 있습니다. 거기 들어가면 제일 눈에 먼저 보이는 것이 이분의 대표적인 시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입니다. 제가 잘 기억은 잘 안 나지만 그냥 생각 나는 대로 여러분들에게 말씀드리면 이 시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를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방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여러분에게 그런 사람이 있으세요? 우와이야어서 와서 한 술 밥이라도 뜨라고, 하이고 요새 어떻게 지내느냐고 물어주는 사람, 내 인생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은 내 인생을 찬란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가치 없다 속절없다 싶은 인생도 의미를 발견하게 합니다. 살아도 되는 거라는 생각을 할 수 있게 합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며 좋은 그리스도인 되어야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가족들에게 좋은 사람 기쁨의 소식이 되어야겠습니다.

 

제가 시집 하나 들고 왔는데 시집 제목이 꿈을 향하여 날아오르다입니다. 이 시집은 비매품으로 5백 권 찍어서 주변에 나눠주고 지금은 달랑 한권 남은 것을 여러분에게 소개하려고 가져온 것입니다. 그 소년원의 이름이 중고등학교로 바뀌었습니다. 서울 소년원의 새 이름은 고봉 중고등학교입니다. 그런데 하루는 한영선이라고 하는 지금은 퇴직하셨습니다만, 서울 소년원의 원장께서 찾아오셔서 목사님 아이들에게 시를 좀 가르쳐주세요.” 하시는 겁니다. 기독교인들 상담사 연합회가 있는데 제가 회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 연합회에 전문가들이 많이 있는데 그때 마침 훌륭한 시 치료하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이분들이 가셔서 아이들과 함께 울고 함께 웃으며 시를 썼습니다. 나중에 시를 보니까 얼마나 감동이 되던지 그것을 보면서 울 때도 많았습니다. 시를 그냥 내버려두는 게 안타깝다고 했더니 원장님이 사비로 시집을 내주셨습니다. 여기에 아이들의 시가 있는데 신상을 보호하기 위해서 필명과 가명을 적었어요.

 

제가 제일 가슴 아팠던 짧은 시가 있습니다. 무지개라는 아이가 쓴 세상에서 가장 듣고 싶은 말입니다.

 

아들, 실수해도 괜찮아.

 

살면서 한 번도 이 이야기를 듣지 못한 아이는 인생을 막 살다가 중한 범죄를 저지르고 거기까지 흘러온 것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괜찮다, 하나님이 너를 지키실 거야. 우와이런 말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그렇게 만나고 있는지 한번 돌이켜 보셔야 됩니다. 아이들 중에 강냉이라는 아이가 있는데요. ‘위로라는 시를 적었어요. 얘가 생각하는 위로가 뭔지 아세요?

 

많이 힘들어, 많이 힘들어?

너무 우울해, 너무 우울해?

고민 있어요, 고민 있어요?

 

부모님들은 정답을 말하라고 합니다.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시행착오를 겪었으니까 너는 이렇게 살라고!’ 정답을 말합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는 그게 위로가 안 된다는 것이거든요. 그냥 내가 한 이야기 되물어만 봐줘도 위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부모님들이 아이들의 말을 들어주지 않고 막합니다. 그러니까 애들이 자기 인생을 놔버리게 됩니요. 나같은 거 살아 뭐하냐고 나같은 거 나가 죽어야지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기뻐해야 할 이유가 있는 겁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기쁨이시니까, 우리 하나님을 기뻐해야 하는 백성이 그리스도인들이니까, 우리 주님이 기쁨의 소식이니까, 그리고 그 기쁨을 고백하는 것이 우리들의 믿음이니까, 더군다나 그 기쁨을 표현하는 순간 내 앞에 있는 사람들이 살아나니까 그래서 기뻐하시라는 것입니다. 또 한번 연습해볼게요. 교회 떠나기 전에 자 옆에 있는 분들 바라보시면서 감탄해 주세요. 이야~ 우와~ 이제 말씀을 생각하시며 묵상가운데 하나님께 결단하기를 부탁드립니다. 주님, 기뻐하며 설령 힘든 인생이라 할지라도 우와 하며 살아가겠습니다. 그걸 결단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