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신 8:11-20, 시 126:1-3, 마 5:6, 10)
• 말씀에로의 나아감
2차 대전이 끝난 직후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의 작은 마을, 광장에는 낡은 영화관이 하나 있었습니다. 어린 소년 토토는 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고 있습니다. 아버지가 전쟁에 나가 전사하였습니다. 토토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곧장 성당으로 달려가 신부님의 일을 돕습니다. 그러나 토토는 그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고 나면 좋아하는 영화를 볼 수 있어서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그 마을 영화관에서 상영되는 작품은 모두 신부님의 검열을 거치게 되어있었는데, 신부님이 검열한 필름을 극장에 전달하는 것은 토토의 몫이었습니다. ‘나도 아저씨와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영사기사 알프레도는 토토를 꾸짖어 돌려보냅니다. 그 길이 배고프고 너무 힘든 길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가 정말 영화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알고서 영사실에 들어오는 걸 허락하고, 영사기 조작법도 알려줍니다. 알프레도는 토토를 무척 귀여워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두 사람의 우정은 점점 깊어갑니다. 집안 형편이 어려운 토토는 초등학교를 졸업한 후 영화관에 취직하여 그 아저씨를 돕습니다. “토토, 네가 영사실 일을 사랑했던 것처럼 무슨 일을 하든 네 일을 사랑하렴.” 알프레도는 아버지와 같이 인생을 사는 법을 알려줍니다.
청년이 된 토토는 은행장의 딸, 엘레나와 사랑에 빠집니다. 그러나 보잘것없는 직업을 가진 청년과의 교제를 찬성할 리가 만무합니다. 토토의 아버지가 전사자였기 때문에 그는 입대하지 않아도 되었지만 딸과 헤어지게 하려는 은행장의 계략으로 토토는 군 징집을 당합니다. 제대를 하고 나왔을 때 사랑하는 여인은 떠나고 없었습니다. 실의에 빠져 방황하는 그에게 알프레도는 마을을 떠나 넓은 세상 로마로 떠나라고 권고합니다. 성공할 때까지는 시칠리아에 오지도 말고 편지도 하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매정해 보였지만 그것은 어른의 지혜였습니다. 잊어버리기 위해서는 떠나는 것이 최상의 방법이었습니다. 로마로 건너간 토토는 알프레도의 조언처럼 30년이 넘도록 고향을 한 번도 찾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명한 영화감독으로 성공을 거둡니다.
1989년, 칸 영화제 심사위원 대상과 골든 글러브 최우수 외국영화작품상, 1990년에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영화작품상을 받은 영화, ????시네마 천국????의 줄거리입니다. 영화는 한 통의 전화를 받은 토토가 30년 동안 찾지 않은 고향을 찾아가는 내용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알프레도가 세상을 떠난다는 소식을 받고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30년 만에 고향을 찾아갑니다. 영화음악의 거장, 엔리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가 작곡한 주제곡과 함께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는 영화입니다. 과거의 아픈 상처를 잊어버릴 수 있었기에 그는 성공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안타까운 기억들, 아픈 기억들,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빨리 잊을수록 좋습니다. 잊어버릴 수 있다는 것은 하늘이 내린 축복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하는 것도 있습니다. 잊기 위해서 떠났고, 잊기 위해서 이를 악물며 일에 매진하여 성공도 했지만 잊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가난했기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 했던 과거의 아픈 기억에 발목이 잡혀 있는 한 그는 무너진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알프레도는 그렇게 권면했지만 그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언젠가 돌아올 토토를 위해 필름을 준비해 놓았습니다. 어린 토토가 봐서 안될 장면들, 연인들의 키스 장면을 이어놓은 것이었습니다. 모리꼬네가 작곡한 주제곡 Love Theme이 흐르는 가운데 토토가 혼자 앉아서 알프레도가 남긴 필름을 보고 보는 장면으로 영화가 끝납니다. unforgettable(잊을 수 없음)…. 그것이 마지막 장면이 전하는 메시지입니다.
• 잊지 말아야 한다 기억해야 한다
오늘 신명기 말씀은 축복의 땅 가나안 문턱에 서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먼 광야 길을 걸어 이제 가나안의 문턱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말씀을 듣고 급히 특별집회를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오후, 저녁... 하루 세 번의 집회를 열고 말씀을 전했던 것 같습니다. 신명기는 그 세 편의 설교가 중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오늘 읽은 신명기 본문은 두 번째 설교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 내용의 핵심은 “잊지 말아야 한다. 분명히 기억하고 살아야 한다”입니다. 무엇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입니까? “하나님과 그분이 행하신 일...” “그분은 여러분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신 하나님, 여러분을 이끌고 저 막막하고 무시무시한 광야, 불뱀과 전갈이 다니는 황량하고 메마른 불모지를 지나게 하신 하나님, 단단한 바위에서 솟아나는 물을 주신 하나님, 여러분의 조상이 들어보지 못한 만나로 광야에서 여러분을 먹이신 하나님이십니다.”(14-16절, 메시지 성경). 극심한 흉년 때문에 야곱 일가 70여명이 이집트(애굽)로 내려갔습니다. 그 나라의 총리가 된 요셉 덕분에 나일강 삼각주 지역 비옥한 땅 고센에서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왕이 등극하면서 그들은 졸지에 노예로 전락합니다. 거대한 국가 창고를 짓는 공사에 투입되어 힘겨운 노역에 시달립니다. 그들은 자녀를 낳아 기르는 기본 권리마저 빼앗기고 희망 없이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로부터 40년이 지났습니다. 이제 그 아픔과 고통의 기억을 떨쳐 내버릴 만도 한데 하나님께서는 다시 그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종 되었던 너희의 과거의 삶을 기억하라.” 이것은 애굽과 원수로 살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너희가 어떠한 처지에 있었는지, 그리고 어떤 은혜를 받았는지를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애굽이 있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가 아시아 정복이라는 야망을 가지고 칼을 갈고 있었을 때 우리 조상들은 당쟁을 일삼고 있었습니다. 일본제국주의는 아시아 전체를 점령하기 위한 교두보로 삼기 위해 무력으로 조선의 국권과 강토를 빼앗았습니다. 식량과 자원을 수탈했고, 젊은이들을 강제로 끌고 가 그들이 일으킨 대동아전쟁의 총알받이로, 전쟁터의 군인들 성 노리개로, 군수물자를 나르고 생산하는 노무자로 삼았습니다. 민족의 혼 자체를 말살하려고 안간힘을 쏟았습니다. 교회에 가해진 압박은 더했습니다. 종탑의 종들을 다 철거해가고, 모세오경과 요한 계시록은 삭제를 당했고, 나중에는 구약은 읽지 못하게 했으며 사복음서만 읽게 했습니다. 교회에서도 예배 전에 일본 국기에 배례하게 했고, 1943년 9월부터는 주일 밤 집회와 수요기도회를 모이지 못하게 했습니다. 신사참배를 강요했고, 따르지 않은 수많은 그리스도인과 목회자를 가두었고, 고문하여 죽였습니다. 민족과 교회지도자들을 모조리 잡아 가두었고 1945년 8월 18일에는 그들을 모두 학살할 계획을 세워두고 있었습니다.
모세는 유언과 같은 설교에서 애굽을 경험하지 못한 젊은이들에게 말합니다. “옛날을 기억하라. 역대의 연대를 생각하라”(신 32:7). 왜 그것을 강조한 것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잊어버리고, 주신 구원의 은혜와 축복을 잊어버리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힘든 광야 사막길을 걸어갈 때도 그들이 애굽을 기억하기만 하면 새 힘이 났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만 기억하면 생각이 났습니다. 그래서 가나안의 풍요 속에 살아갈 때 애굽의 종살이 하던 때를 기억하라고 말씀합니다.
우리에게도 영적 애굽이 있었습니다. 성경은 계속해서 그것을 강조합니다. ‘너희가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긍휼을 얻지 못하던 자들이었다... 너희가 전에는 영적으로 죽은 자들이요, 사망의 덫에 걸려 있던 자들이었다. 진노의 자식들이요, 멸망의 자식들이었다...’ 하나님의 긍휼을 도무지 받을 수 없는 그런 자리에 떨고 서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한없으신 긍휼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사랑을 베풀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해방된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고, 그분의 은혜였습니다. 어두운 민족 이스라엘의 어느 누구도 바로의 압제에서 풀려날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전권을 가지고 바로에게 나아가지만 권력자는 콧방귀를 뀌었습니다.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세의 능력으로 된 것입니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너희를 택하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너희가 대단한 존재들이어서가 아니었다. 무궁한 사랑으로 너희들을 택해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광야의 길을 갈 때 너희들을 돌보아주신 하나님을 기억하라. 너희에게 하늘 문을 여서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여 주시던 그 하나님을 기억하라...’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있을 때 그들은 건강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해방 사건을 상세하게 들려주는 출애굽기서는 이스라엘을 향해 “내 백성”(출 3:10)이라고 소개하면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6:7).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부름 받은 사람들이요, 하나님을 섬기게 하기 위해서 그들을 해방하셨다고 말씀합니다(8:27).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구원 사건을 사명으로 연결하고 있습니다.
• 잊어버림의 때
그러면 말씀이 권고해주는 잊어버림의 때는 언제입니까? 어느 때 조심하라고 말씀하십니까? 하나님은 “이때”에 대해 깊이 관심을 기울이십니다. 12절 이하는 그렇게 말씀합니다. “여러분이 배불리 먹고, 좋은 집을 지어 거기서 살고, 여러분의 소떼와 양떼가 늘어나 돈이 더 많아지고, 여러분의 생활 수준이 점점 높아질 때, 행여 여러분의 마음이 여러분 자신과 여러분의 재산으로 가득 차서 하나님, 여러분의 하나님을 잊는 일이 없게 하십시오.”(신 8:12-14, 메시지성경). 너희가 잘살게 될 때, 모든 것이 풍요로울 때, 아름다운 집에서 살게 될 때 그때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흔히 사람들은 어려울 때, 문제가 있을 때, 고통과 아픔이 있을 때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습니다. 이것만 해결되면 하나님을 잘 믿을 것 같은데 정작 모든 것이 다 잘 되게 되면 그렇지 못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헛셀 포오드의 책 가운데 그런 이야기를 읽었습니다. 한 청년이 그 목사님을 찾아와 기도 부탁을 했습니다. “목사님, 제가 새로 사업을 시작했는데 사업이 잘되게 기도해 주십시오. 그 사업이 잘되면 하나님께 십일조도 드리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많이 하겠습니다.” 목사님은 그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 응답 때문인지 그 청년의 사업도 놀랍게 번창했습니다. 사업 규모가 커지자 정신없이 바빠지기 시작했습니다. 약속했던 것은 까마득하게 잊어버렸고, 너무 바빠서 이제는 예배도 제대로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회사로 심방을 갔습니다. “요즘에 예배도 안 나오고 신앙생활을 등한히 하십니까? 사업 시작할 때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잊었습니까?” 자기가 한 약속이 생각나서 이 젊은 사업가는 변명을 늘어놓았습니다. “목사님, 사업이 여간 바빠야지요. 또 돈의 액수가 커지니까 회사 경영상 수입의 십분의 일을 떼어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여러 군데 사업장을 벌이다 보니까 교회에 가고 싶어도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그 청년 실업가의 손을 붙잡고 함께 기도하자고 했습니다. “하나님, 이 형제가 교회에 출석하고 싶어도 사업이 너무 잘 되어 바빠서 예배에 못 나온답니다. 수입이 너무 많아서 십일조 헌금하기가 어렵답니다. 수입과 사업의 규모를 옛날처럼 줄여 주시고, 가능하면 사업도 잘 안 되게 하셔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예배도 잘 드릴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세상일이 너무 잘 되어서 신앙이 죽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자 그 청년 사업가는 바로 회개했습니다.
사실 가난할 때, 어려울 때는 어떤 점에서 문제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이 잘되고, 편안하고, 풍요롭게 되었을 때,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을 때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광야를 걸어가는 이스라엘을 걱정하신 것이 아니라 가나안에 들어가는 이스라엘을 걱정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깊이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모든 것이 풍족해질 때 교만해지지 말고, 삼가 조심할 것이며, 누가 은혜를 주셨는지, 누가 구원하시고 인도하셨는지를 잊지 말 것을 권고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의 은혜를 누렸지만 우리는 정치적으로 후진국이었고, 국민소득 100불도 안 되는 최빈국이었습니다. 그리고 강대국의 이데올로기로 나뉘어 동족상잔의 전쟁을 치루었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가면서 세계 유일의 분단민족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70여년동안 우리는 전쟁 이야기에 시달리며, 그 이야기만을 하면서 살아온 민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은혜로 이만큼 살고 있습니다. 잘먹고 잘 살게 될 때, 그때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망하는 길밖에 없고, 무너져 내리는 길밖에는 없기 때문입니다.
• 주신 복을 잊지 않는 길이 사는 길이다
고난 속에서 살아온 유대인들은 이제 예루살렘에 ‘유대인 대학살 기념관’을 지어놓고 그것을 “야드 바솀”이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 말은 “기억하라”는 히브리어인데, 1939년부터 1945년까지 독일에서 있었던 600만 유대인 학살사건을 기억하는 기념관입니다. 그 기념관 입구에는 “용서하라. 그러나 잊지 말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혹시 기억상실증에 걸리는 유대인이 있을까 봐 당시의 처참한 상황을 생생하게 전시하고 있습니다. 그 아픔과 고통의 순간들을 기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어려움을 잊고 살면 우리는 망한다는 생각 때문이며, 기억하지 못하는 역사는 반복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일본의 압제로부터 벗어난 광복 74주년 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 민족은 러시아, 청나라, 일본, 그리고 멀리 미국과 영국까지 지정학적 이유로 한반도를 손아귀에 넣으려는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놓여있던 작고 힘없는 민족이었습니다. 결국 일본 제국주의에게 국권과 국토는 강탈을 당하였고, 고통을 당했지만 하나님의 은혜로 해방이 되었습니다. 오늘날도 강대국의 틈바구니에서 줄타기는 해야 하는 상황은 비슷합니다.
그 아픔의 시간, 많은 사람들이 광복을 염원하며 죽어갔습니다. ‘상록수’의 작가 심훈도 그중의 한 사람이지요. 1930년대 초에 쓴 시, “그날이 오면”에는 광복에 대한 그의 간절한 염원이 담겨있습니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 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하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人磬)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을 울며 뛰며 뒹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이 시에는 광복의 그날을 간절히 염원하는 시인의 염원과 비장한 절규와 호소가 담겨있습니다. 시인 만이었겠습니까? 친일파를 제외하고 대한의 모든 사람이 그것을 염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날’을 보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심훈 선생은 1936년, 35살의 나이로, 윤동주 시인은 광복 6개월 전에 생체실험의 대상이 되어 일본 감옥에서 눈을 감습니다. ‘그날은’ 언제나 아득한 미래였으며 민족의 가슴 속에 있던 염원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독립운동을 했던 시인 이육사나 청산리전투에 참가했던 이범석조차도 해방의 그날은 아득한 미래로 생각했다고 하니 암담했던 당시의 상황을 엿보게 됩니다.
“파락호”라는 말이 있지요. 지난날 행세깨나 했던 집안의 자손으로 허랑방탕한 사람을 이르는 말입니다. 『양반동네 소동기』라는 책의 저자 윤학준은 근대 한국의 3대 파락호로 흥선대원군 이하응, 1930년대 형평사(衡平社) 운동의 투사였던 김남수(金南洙), 그리고 학봉 종손인 김용환을 꼽았습니다. 학봉 김성일은 퇴계 이황의 수제자로 임진왜란 때 경남 지역에서 크게 공을 세운 인물이지요. 그의 13대 손인 김용환은 대대로 내려오던 전답 18만평, 현재 시가로 약 200억 원의 재산을 모두 거덜 냈다고 하니 파락호 중에 최고인 셈입니다. 무남독녀 외동딸의 혼수 장만 비용마저 들고 나가 써버렸다니 가히 최고의 난봉꾼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는 광복 이듬해인 1946년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런데 그간 탕진했다고 믿었던 돈은 모두 만주 독립군에게 군자금으로 보냈음이 알려졌으며 파락호 행세는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기 위한 철저한 위장술이었음이 독립운동하는 사람들을 통해 밝혀졌습니다. 거금을 아낌없이 희사한 것도 경탄할 일이지만 주색잡기, 노름꾼 등 불명예스런 비난 속에서도 식구들에게 조차 절대 함구한 의지력 또한 놀라울 따름입니다. 김용환의 무남독녀 외동딸인 김후웅 여사는 1995년 아버지가 생전의 공로로 건국훈장을 추서 받게 되자, 50년이 지나서야 아버지에 대한 그간의 한 많은 소회(所懷)를 ‘우리 아배 참봉 나으리’라는 글에서 이렇게 남기고 있습니다. “…그럭저럭 나이 차서 십육 세에 시집가니 청송 마평 서씨 문중에 혼인은 하였으나 신행날 받았어도 갈 수 없는 딱한 사정. 신행 때 농 사오라 시댁에서 맡긴 돈, 그 돈마저 가져가서 어디에다 쓰셨는지? 우리 아배 기다리며 신행날 늦추다가 큰어매 쓰던 헌농 신행발에 싣고 가니 주위에서 쑥덕쑥덕. 그로부터 시집살이 주눅 들어 안절부절, 끝내는 귀신 붙어 왔다 하여 강변 모래밭에 꺼내다가 부수어 불태우니 오동나무 삼층장이 불길은 왜 그리도 높던지, 새색시 오만간장 그 광경 어떠할꼬. 이 모든 것 우리 아배 원망하며 별난 시집 사느라고 오만간장 녹였더니 오늘에야 알고 보니 이 모든 것 저 모든 것 독립군 자금 위해 그 많던 천석 재산 다 바쳐도 모자라서 하나뿐인 외동딸 시댁에서 보낸 농 값 그것마저 다 바쳤구나….” 정말 위대한 위대한 파락호입니다. 가족에게도 숨겼다는 이야기는 그만큼 어려웠다는 말이겠지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그날’의 축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그렇게도 염원하였던 바로 그날, 그 광복이 주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문턱에서 받은 말씀을 가슴에 새기고 4,000년이 지난 오늘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광복의 은혜, 구원의 은혜,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신 은혜, 살아오는 동안 베풀어 주신 은혜를 잊지 않으려고 몸부림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복과 은혜를 잊지 않는 것이 이 민족이 사는 길입니다.
올해로 우리는 조국 광복 74년, 3.1운동 100주년을 맞고 있습니다. 일본 아베 정권이 제국주의의 부활을 꿈꾸며 감행한 경제 보복 조치로 인해 어수선한 상황입니다. 경제 보복 행위는 명백한 국제법 위반이며, 제2의 침략과 같습니다. 지난달에는 러시아와 중국의 영공 침공에 이어 북한의 미사일 발사까지 이어지면서 한반도는 편한 날이 없어 보이고, 국제정세는 숨 가쁘게 진행되는 때를 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광복절을 맞으면서 민족의 역사를 생각합니다.
우리 민족에게도 ‘이집트’가 있었고 그 압제가 있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는 무력으로 국권과 강토를 빼앗고 짓밟으면서 민족혼 자체를 말살하려고 했습니다. 젊은이들은 그들이 일으킨 전쟁의 총알받이와 위안부로 끌려가 모멸을 당하다가 외국 땅에서 죽어갔습니다. 언어와 성씨와 자유와 민족의 혼을 빼앗으려 했습니다. 해방은 꿈조차 꿀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기도했고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일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해방된 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었고 그분의 은혜였듯이, 우리 민족이 경험한 해방도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었습니다.
말씀을 준비하다가 “대한이 살아있다”라는 노래를 몇 번을 꺼내서 들었습니다. 광복절 설교를 준비하면서 들었기 때문인지 온몸에 전율이 느껴졌고 눈물이 났습니다. 3.1 운동 직후 서대문형무소 여옥사 8호실에는 만세운동에 참가했던 젊은 여성 7명이 갇혀 있었습니다. 김향화, 권애라, 신관빈, 심명철, 임명애, 어윤희, 유관순... 대부분이 10대 중반에서 후반의 젊은 여성들이었습니다. 고문을 받다가 죽은 사람도 있었으니 그때 모두가 두려움과 공포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을 것입니다. 공포의 밤을 달래며 서로 용기를 불어넣으려 옥중에서 노래를 만들어 불렀던 창가(唱歌)였던 셈입니다. 누가 가사를 썼는지 정확하지 않지만 7명의 십대 소녀들이 함께 감옥 바닥에 엎드려 이 노랫말을 고쳐 써 노래를 만들어 함께 불렀을 것입니다. 개성 호수돈여학교 졸업생이었던 심명철 지사의 아들(문무일 선생)이 어머니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 받아 적은 가사에 음악감독 정재일이 곡을 붙인 것이 “대한이 살았다”라는 노래입니다.
진중이 일곱이 진흙색 일복 입고/
두 무릎 꿇고 앉아 하나님께 기도할 때/
접시 두 개 콩밥덩이 창문 열고 던져줄 때/
피눈물로 기도했네 피눈물로 기도했네/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산천이 동하고 바다가 끓는다/
에헤이 데헤이 에헤이 데헤이/
대한이 살았다 대한이 살았다.
노래에 나오는 ‘전중이’는 본래 가사에는 ‘진중이’로 되어있습니다. ‘전중이’의 오기로 추정합니다. 국어대사전은 ‘전중이’를 ‘징역살이하는 사람을 속되게 이르는 말’로 정의합니다. 그 노래를 한번 듣겠습니다.
대부분 10대였던 그들은 기독교에서 세운 여학교를 졸업했고 기독교 신앙을 통해 민족 독립의식을 키웠습니다. 그리고 대한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치다가 서대문 형무소에 갇혀 걷지 못할 정도로 치욕스러운 고문을 당하고 돌아온 저녁에 감방에 함께 모여 그들은 피눈물로 기도했답니다. 이 노래를 함께 부르며 서로를 격려했답니다. 여러 차례 간수들이 제지 했지만 그들은 노래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노래했고, 하나님은 일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조국 해방의 광복의 그날이 주어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 민족이 사는 길은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민족에게 주신 은혜를 잊지 않는 것입니다. 이 일에 우리 모두가 앞장서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