밝은 눈으로 왔더라
(요한복음 9:1-12)
요한복음 9장에서 제자들은 날 때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맹인을 보고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이 물음의 이면에는 이 사람은 죄 때문에 눈먼 자로 태어났다는 생각이 깔려 있습니다. 이런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이 사람이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맹인을 통하여 나타내실 영광과 능력, 우리 인간이 생각하지 못하는 하나님의 일이 계획되어져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은 죄는 자녀들에게 전수되며 모든 질병이 죄의 결과라고 생각하며 운명처럼 숙명처럼 받아들이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 하나님의 섭리, 예정이라고 말합니다. 지금 처한 상황에 어려움이 있지만 그 어려움을 통해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맹인의 눈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발라 주신 후에 실로암 연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맹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여 실로암에 가서 얼굴과 눈을 씻고 “밝은 눈으로” 돌아왔습니다. 사실 맹인이 실로암까지 가는 길은 실로 암담한 길, 고난의 길이었을 것입니다. 숙명론에 의하면 이 사람은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삶이 자신의 숙명이라고 생각하며 계속 그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이 맹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구걸하며 살아가던 숙명론적인 삶을 벗어 버리고 실로암 연못을 찾아가 눈을 뜨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인간이 생각하는 모든 운명, 숙명, 팔자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 허무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에는 홍해바다,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는 절체절명의 위기 앞에서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운명을 믿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사고방식입니다. 이들을 향해 모세가 말합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믿음은 우리가 처해 있는 홍해바다와 같은 상황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나를 위해 행하시는 하나님의 일, 하나님의 역사,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너 자신의 실로암으로 가라.” 실로암으로 향하는 이 길은 다른 사람들과 달리 먼 길을 돌아가야 하는, 흑암 속에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실로 암담한 길일지도 모릅니다. 때로는 육신의 질병을 만나고, 기도 응답이 더디고, 내 인생의 시간과 삶의 에너지가 다 고갈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건 우리가 실로암까지 가는 그 길은 주님으로부터 보냄 받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그 길을 걸어갈 때 밝은 눈으로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 다시 한번 주님을 향하여 새롭게 눈을 뜨고 믿음의 삶을 살아가는 실로암의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