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만한 기쁨을 누림이라
(요한일서 1:1-4)
성경을 읽어보면 인생을 즐겁고 기쁘게 살아간 한 사람을 발견하게 됩니다. 바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은 감옥에서 쓴 전체 4장밖에 되지 않은 빌립보서에서 18번이나 “기뻐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나의 삶은 참으로 기쁜 삶이다. 여러분들도 기쁜 삶을 살아야 한다. 잠시 기뻐할 것이 아니라 항상 기뻐하라. 조금 기뻐할 것이 아니라 기뻐하고 또 기뻐하라’ 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를 ‘기쁨의 서신’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감옥에 있는 바울을 그렇게 기쁘게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빌립보교회는 바울이 하나님의 계시인 환상을 통하여 마게도냐 지방으로 건너가 복음을 전하여 세운 첫 번째 교회였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1장 3절 이하에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라고 하였으며 1장 4절에서도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하였으며, 4장 1절에서도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고백했습니다. 감옥 안에서 바울이 늘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빌립보교회 교인들 때문이었습니다. 빌립보교회와 교인들이 바울의 기쁨의 근원이요 원천이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물질이나 취미와 오락이, 지식이나 명예, 권력에서 기쁨의 근원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각입니다. 진정한 기쁨은 인간으로부터, 인간관계 속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인간관계를 소중하게 가꾸어야 합니다. 거기에 진정한 기쁨이 있고 행복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떻게 우리가 우리의 삶에 기쁨이 넘치는 인간관계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1서 1장 3절에서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관계에 앞서 먼저 하나님과 예수님과의 ‘사귐’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더불어 누리는 사귐의 관계 속에서 사람과의 관계가 이어질 때 그 속에 하나님의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예수님과의 관계와 사귐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사귐을 질적으로 변화시키는 근원이 되기 때문입니다. 나에게 계속 속으시고 이용당하시고 배신당하시는 예수님, 모든 것을 아시지만 조금도 내색하지 않으시고 변함없이 나를 사랑해주시는 예수님, 우리가 예수님을 이용할지라도 책망하지 않으시는 예수님과의 사귐 때문에 우리도 우리를 속이고 배신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을 용서하고 사랑하며 관계를 이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과의 진정한 관계 안에서만 우리는 충만한 기쁨과 즐거움, 행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과의 진정한 사귐, 만남, 예수님과 깊은 은혜의 관계를 통하여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진정한 만남이 있을 때 우리는 충만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이 같은 충만한 기쁨이 여러분의 마음과 가정 그리고 우리 교회 안에 충만한 기쁨으로 누려지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