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돌을 치우라
(요한복음 11:31-44)
길가의 빨간 줄장미가 흐드러지게 피는 6월이 되면 ‘갈릴리교회의 생일이 되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36년 전 6명으로 시작한 갈릴리교회는 가슴이 울렁거리고 감동적인 기적이 일어난 교회였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있었던 기적의 이야기가 널리널리 퍼져 나가 온 동네에 한국교회 안에 더 나아가 외국교회에까지 알려졌습니다. 오늘 본문 요한복음 11장의 죽은 나사로가 살아난 기적은 기적 중의 기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갈릴리교회에 이러한 기적이 일어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할지 본문을 통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마르다와 마리아의 신앙에 대해서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계실 때 베다니 나사로의 집에서 묵으셨다는 말이 나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나사로의 누이들로 예수님과는 아주 긴밀한 관계였습니다. 그런데 나사로가 죽었다는 말을 듣고 이 가정에 찾아오신 예수님께서 마르다에게 나사로가 살아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마르다는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지금 일어날 일이 아니라 먼 훗날 일어날 일이라는 것입니다. 마르다의 신앙은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 듯 해 보일지 모르지만 잘못된 신앙입니다. 지식으로 아는 교리적인 신앙입니다. 반면 마리아는 마르다와 달리 예수님 발밑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이해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리어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을 원망하는 이기적인 신앙입니다. 기복적 신앙입니다. 이것이 마리아와 마르다가 가진 신앙이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이 나사로를 살려주시겠다고 하신 말씀을 믿지 못하고 엉뚱한 대답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일을 비통히 여기시고 불쌍히 여기셨다고 했습니다. 기적은 오늘, 지금 일어나는 구체적인 것이어야 합니다.
두 번째 38절 말씀을 보면 무덤이 굴이라 돌로 막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셨습니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께서 막혀 있는 돌에게 명령하여 굴러가라고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죽은 사람도 살리는데 돌 하나 움직이지 것은 너무도 쉬운 일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무덤 앞에 서서 사람들에게 돌을 옮겨 놓으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다 하실 수 있지만 사람이 해야 할 일, 사람이 해야 할 몫을 통해서 기적을 일으키십니다. 고작 어린아이의 한 끼 양식인 오병이어가 예수님의 손에 들려졌을 때 오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먼저 우리가 가진 것이 예수님의 손에 들려드릴 때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지난날 우리 교회는 기적의 소문이 끊이지 않던 교회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가복음 17장을 다시 쓰는 기적의 교회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과 나사로 사이에 있는 돌을 치워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오병이어를 예수님의 손에 들려드려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다시한번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