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프가니스탄,(the Islamic State of Afghanistan)을 다녀와서...***
(박경남, 조경아님 어른께서 인터넷 상 아프간의 특수한 사정 때문에 특수용어 사용 자재 요청으로 OO 사용합니다.)
아프간의 박경남 O교사님과 조경아 O교사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세상의 유리한 조건을 내려놓고 열악한 환경에서 자신들을 희생하여 사랑의 의료 활동을 펼쳐가는 젊은 부부이다. 그동안 국제 전화가 걸려오면 최선을 다해 응대했고, 의료기기 분야의 짧은 지식이나마 돕고 싶은 열정 가득한 나였다. 그러나 현지에서 진료를 위한 이런 저런 문의 전화가 걸려 오면 현지의 의료환경을 몰라서 무척이나 답답하였다. 하는 수 없이 현지를 방문해 살펴보겠다고 약속하고 초청장을 보내달라고 하였다.
모든 것은 순조롭게 준비되어 2004년 8월경 출국, 방콕에서 환승하고 파키스탄에 도착했다. 한국기업의 현지법인 대우 그룹의 고속버스로 약 760Km를 달려서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 하룻밤을 지낸 뒤 국제 연합 소속(UN) 경비행기를 탔다. 테러의 위협으로부터 안전을 위해 UN 소속 경비행기 탑승을 준비한 것으로 생각됐다. 비행기는 파키스탄 국경을 넘어 아프간 땅에 이르렀는데 보이는 산(95%이상 산)과 들은 온통 옅은 황토색에(나무, 풀, 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은 땅같이 보였다. 승객은 NGO 요원 8명, 승무원 2명 등 11명이 날아가고 있는데 기압의 문제인지 덜커덩! 와르르! 와장창! 기내의 모든 보따리들이 분해되어 나뒹굴었다. 아찔한 순간, 하나님께서 이렇게 나를 부르시는가 했는데 순간이 지나고 승객들은 서로를 응시하며 안정을 찾았고 얼마 후 수도 카불 공항에 착륙하였다. 수도 카불 공항에는 거의가 군용기이며 지뢰를 탐지하는 군인, (서양쪽 사람들 인듯?) 무장한 군인들로 꽉 차 공포스런 분위기였다.
삼엄한 분위기에서 아프간 국내선 비행기로 바꿔타고 얼마 후 최종 목적지에 도착했는데 옛날 우리네 시골 간이역 수준 시설이었다. 어깨에 총을 멘 관계자들에게 수속을 마치고 밖을 보는 순간 박경남 O교사 님과 딸 주선이가 미소 지으며 나를 보고 있었다. 반가움과 안도감이 밀려오는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택시를 대절해 왔는데 택시는 일본 제품 소형차로 20년~30년쯤 나이 먹은 차량으로 보였으며 밑이건 옆이건 위쪽이건 간에, 구멍들이 뻥뻥 뚫려 있어서 먼지와 바람이 들어오고 냉, 온방은 의미없이 보였다. 이동 중 구로동 김영수 의사 선생님께서 제의했던 (이동진료 및 기동성 확보를 위한) 산타모 웨건 중고차량 기증 의향을 전달했는데, 그 정도 급이면 현지에서는 고급 자동차로 테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며 사양하였다.
숙소로 가는 길 양쪽에는 부서진 탱크, 군용 차량들이 널부러져 있었으며 전쟁중인 느낌을 주었다.
숙소에 도착하였는데 높은 흙담집 마당에는 수동 펌프 우물, 한 두그루의 나무, 가옥 구조도 서서 들어갈 수 없는 문틀 구조였다. 반갑게 아들 주현이와 인사를 나눈 후 정전이 됐는데, 이웃나라에서 전기를 끌어다 쓰고 있어서 요금을 미납한다거나 열악한 전기환경 때문에 수시로 정전이 되는 환경이었다. 의료현장을 보기위해 박경남 O교사님과 진료하는 병원을 몇 곳 방문했는데 그 열악한 조건은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환경이었다. 이동 간에 박경남 O교사, 조경아 O교사님은 현지인 복장과 유창한 현지어로 거의 아프간 현지인 의사였다.
안전과, 의사소통, 업무의 특수성 등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데 부족함 없는 듯, 하늘의 도움만 더해지면 목표하는 사역은 술술 풀려가리라 예측되어 매우 기대가 컸다.
며칠간의 일정을 끝내고 풍토병 예방약을 박경남 O교사님으로부터 받아 복용한 후 귀국해서 인천공항에 내리는데, 편안함과 안정감에 고향마을에 오는 듯 했다. 하늘에서 내게 안전한 여행을 허락하신 것에 감사하였다.
그로부터 2년 후인 2006년, 구로구 갈릴리 마을에서 아프간 방문 계획이 수립되어 여러 사람의 정성을 모아 약간의 금품과 물품을 준비해서 인명진 OO사님과 출국하였다. 비행기표와 모든 일정이 철저한 절약 스케줄로 되어 다소 불편하였지만 공금을 절약하였기 때문에 마음은 편했다.
이동중에 인명진 OO사님의 유창한 영어구사로 나 혼자 갈 때 받은 초보수준 영어 회화로 받은 스트레스는 없었다. 아프간 수도 카불에 도착하여 보니 2년전보다는 안정된 거리 분위기였다. 가장 감명 깊었던 것은 현지에서 자동차로 상당한 시간을 이동하여 맑고 깨끗한 지하수가 솟아 흐르는 물 속에서 하늘이 안전을 지켜주리라 믿으며 현지인에게 준 OO의식이었다.
2004년, 2006년의 두 번의 아프간 방문 후, 나는 아프간 현지 가족(박경남 O교사님, 조경아 O교사님, 주선, 주현)의 OOO 닮은 아름다운 삶이 하늘에 이르러 크나큰 사역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