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순례

신고

성지순례

 

 

“거울은 당신의 얼굴이 얼마나 늙었는지 보여주고,

해시계는 당신의 인생이 얼마나 낭비 되었는가를 보여준다“

 

 

-셰익스피어-

낯선 곳으로의 여행은 낯선 문화에 대한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엉켜

나의 영혼의 한 정거장을 만들어 간다.

일상의 생활을 잠시 접어 나의 옷장 안에 가두어 두고,

새로운 곳을 향한 마음의 새 옷을 갈아입으며, 새로운듯 그러나 익숙한 몸짓으로,

공항을 들어선다. 모니터를 보고, 입국 수속 넘버를 체크하며,

언제나 거기 꼭 있어야 될 몸짓으로 트렁크를 끌고 앞서가는 남편의 뒷자락을 보면서

실(?)처럼 이어 걷는다. 비즈니스를 위한 출장, 효도여행, 친구와의 여행, 등등 많은

사연들이 여행 한 웅큼이 흩뿌려져 제각각의 비행기에 몸을 싣는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여행은 새로운 추억을 만들어가고, 공통의 기쁨과 감동으로

새겨지는 또 하나의 주름을 얼굴에 만들어 가겠지?

성지 순례의 길 에 함께한 갈릴리 식구들 과 같은 추억을 가지고, 앞으로의 믿음의

협력자로서, 서로에 대한 깊은 애정과 관심을 위해 기도 했다.

어머니 같은 홍 권사님(목사님 어머니), 아직 순진하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띈

조용애 권사님, 너무 씩씩 하셔서 괜히 미안한 박정희 권사님, 정직하고 바른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시는 김석수 장로님, 인생의 선배이신 차 권사님 과 홍 권사님, 그리고

순수함을 간직한 인 권사님,젊은 미모들과 젊은 오빠(고등학생)들, 그 중 가장 우뚝

선 우리 인명진 목사님! 을 위해!

 

 

* 카이로*

중동 문화의 원조인 이집트!

희뿌연 사막 바람 사이로 카이로는 어느새 문명에 젖어, 맨발의 이집트인들의

너풀거리는 긴 자락 소매 위에서 흐느적거리고 이었다.

문맹률이 43%, 책을 읽기 싫어하는 이집트인들, 그래서 운전면허 시험도 그림으로

풀어가는 그들은, 어쩌면 합리적인지만 이기적인 문명이라는 열차를 거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시내 한 복판에 차지하고 있는 김일성 기념 도서관을 보면서 아이러니를 느꼈다.

과거 코리아라면 북한만을 알았다는 그들......

월드컵을 치르고서야 대한민국이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것도 아주 풍요로운 나라,

급속한 경제성장의 알고 있다는 그들의 인식에 어느덧 내 나라에 대한 슬픈 애정이

물결쳤다.

 

 

* 피라미드 *

이집트 시내에서 약 13km 에 위치한 가자에 피라밋은 평소 그림이나 사진을 통해

보던 느낌과 크게 다를바가 없었다. 약 4500년전 왕국 제 4 왕조시대에(BC2613-

2494)의 쿠푸 왕, 카푸레 왕, 멘카우레 왕의 무덤이 있으며, 현존하는 70여개의

피라밋 중 원형이 질 보존 되어 있다고 한다.

각 능선은 정확하게 동, 서, 남, 북,을 가르키고, 105m의 상승통로는 북극에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용자리의 알파별을 삼았다고 하니, 그 당시의 천문학이, 지금과

크게 다를바 없지 않을까?

표면에 돌들은 세월의 흔적을 껴안고, 사막 바람과 싸운듯이 깍여져 있었다.

여기저기 밟히는 낙타의 배설물과, 관광객을 유인하는 낙타주인들의 눈짖이 웬지

서글픈 것은 나만의 감성일까?

 

 

* 스핑크스 *

카프레 왕의 피라밋 동쪽에 피라밋 수호신으로 자리하고 있는 스핑크스는 높이 22m

길이 75m 인데, 거대한 돌덩어리 하나를 조각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그저

놀라울 뿐이다. 원래는 왕의 신분을 나타내는 턱수염이 있었으나 지금은 코 마저

뭉그러져 있었다.

아마 우리나라에 있었다면 진작에 코를 새로 만들어서 붙여야 한다고 야단 법석

이었을 것 을 생각하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스웨즈 운하*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지하 터널로만 그 유명한 스웨즈 운하를 통과 하면서,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이집트의 수웨즈 운하 공사에 얽힌 사연을 들었다.

소요시간 10년, 폭 4km, 물깊이 200m, 1869년 완성, 그 후로도 서로의

주도권 전쟁으로 인하여 개통을 못하고 1875년 완전한 개통을 이루어 그 기념으로

이집트 에서는 베르디의 오페라 “아이다”를 공연 하려는 계획을 세웠지만,

오페라 하우스에 불이 나서, 그 마저도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 후 결국은

이집트가 가지고 있던 스웨즈 운하에 대한 주식 전부를 영국에 빼앗겼다고 한다.

지금은 물론 이집트기 다시 찾았지만......

 

 

*모세교회*

1933년에 발견된 모세의 무덤이라 측정하는 터 위에 세워진 모세교회는

느보산 해발 약 800m에있으며, 모세의 무덤은 없지만, 저 멀리 가나안 땅이

희미하게 보이는 곳에 있었다.

그 당시 발견 되었던 모자이크 바닥재들이 벽에 그림처럼 걸려 있는데,

마치, 모세가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과 광야를 헤매던 그 모래들이,

서로 엉겨, 모자이크를 이룬듯해, 슬픔을 불러 왔다.

모세는 그 당시 왜 젊은 나이 120세에 (그 당시 평균수명 보다) 죽었을까?

죽었다면 무덤은 과연 있는 것일까?, 아니면 모세 스스로 므리바의 샘물

사건(하나님께서는 지팡이를 바위에 대면 물이 나게 해 주겠다고 하셨는데,

모세는 바위를 쳐서 물이 나오게 하므로,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자신을 나타냄)

등, 여러 가지를 고민하다 자살한 것일까?

일부에서는 모세 스스로 가나안 땅을 포기했다 는 학설도 있다는데...

40년 광야 생활동안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로 여러 이적들을 통해 인도 했지만

새로운 가나안땅 까지 들어간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우는 (마치 모세가

신처럼 될지도) 일이 될까봐, 믿음의 지도자 모세는 스스로 포기한건 아닐까?

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 20대 이상의 모든

백성을 죽이시고, 새 땅에는 새로운 백성과 지도자를 원하셨다는데...

여러 가지 생각들이 교회를 둘러싸며 내리는 안개비와 뒤엉키어 버렸다.

 

 

* 오병이어 기념교회 *

중세시대에 순례자들이 오병이어를 행한 지역을 찾다가, 물고기 두 마리와 떡반죽 그릇이

있는 모자이크를 이곳에서 발견하고, 기념교회를 지었다고 하는데, 실제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룬 곳 은 뱃세다 지역이라 한다.

5,000병의 군중들을 먹이시라 하셨는데, 가진 것이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가

전부였는지? 아니면 어린아이가 가지고 있는 전부를 내어놓으므로, 또 주님 께서 축사하신후

군중들이 감동하여, 가지고 온 것 나눔으로, 배부르고 남는 기적이 일어난 것인지? 알수는

없지만, 분명 한 것은 믿는자는 나눔을 통해 실천하는 것이다.

 

 

* 종려나무*

행운을 상징하는 나무였으며, 생명이 다 할수록, 허리를 굽히고, 40년 자라야 열매를

맺는다고 하며, 140년이 수명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마리아와 예수님이 바로왕을 피해 이집트로 들어오시는데, 알라이시라는

지역을 지나다가, 종려나무 밑에 쉬게 되었다 한다.

마리아가 너무 배개 고파, “누가 저 종려 열매를 따주면 얼마나 좋을까” 라는 생각을 하였는데

그때 종려나무가 허리를 땅까지 굽혀, 마리아가 종려열매를 앉아서 따 먹었다고 하니

종려나무도, 예수님과 마리아를 알아보았던 모양이다.

 

 

* 팔복 교회

팔복교회를 올라가는 언덕은 부드러운 능선들이 있었고, 낮으막한 언덕이었다.

노란색의 작은 들꽃이 여기저기 피어있었고, 올리브 나뭇잎은 갈릴리 호수의 했빛을 받아

반짝이고 있었다.

팔각기둥으로 세워진 교회는, 주님께서 8가지의 복을 말씀하신 산상교훈이, 있었다.

 

 

*갈릴리

찬송가 304장 “ 그 크신 하나인의 사랑” 을 버스 안에서 한목소리로 불렀다.

갈릴리 지방은 해발 200M 위치해 있으며,

예루살렘은 해발 790M, 사해는 해발 400M, 여리고는 350-400M라 한다.

갈릴리의 흙과 돌들은 모두 검정색 이었다.

다른 곳 에 비해 나무와 풀이 많고, 식물들이 잘 자라는 환경이라 한다.

가장 따듯한 갈릴리 지역에 가장 먼저 보리 싹이 나므로, 그 첫 열매로

초실절 제사를 드렸다 한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그 시간에, 예루살렘은 초실절 예배를 드렸다

그리스도께서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셔서, 초실절 제사를 드리기 전에는

자기 땅에서 난 곡식을 먹을 수 없었고, 제사를 드린 후 에야, 먹을 수 있었다.

초실절 제사를 드린 날로부터 7x7일이 되던 날에 칠칠절 제사를 드렸고,

그 후 50일이 되는 날 에 오순절 제사를 드렸다 한다.

오순절이 지나면 계절이 바뀌어, 나무에 열매가 열리며, 9월쯤이면 전부

추수 하게 되는데, 이때가 초막절이 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 앞에 먼저 수확의 10분의 1을 주님의 제단에,

나머지 50분의 1을 제사장을 위해,

나머지 10분의 1을 가난한 이웃들을 위해,

나머지를 자신들을 위해 사용했다.

갈릴리에서 가나는 걸어서 반나절 정도인데, 작은 언덕을 넘어간다.

파릇한 풀 사이로, 검은 돌맹이들이 누워 있고, 멀리 아르벨 골짜기 끝자락이,

흐릿한 안개 속 에 선명한 몸짓을 하고 있다.

신발의 끈을 다 잡아매고, 산을 오른다.

산 중턱에 핀 노란 들꽃들은, 연두색, 초록색 잎사귀들과 부딪히며, 사랑을 나눈다.

어느새 산바람이 나의 마음 을 녹이며, 그리움이 골짜기로 아지랑이를 피운다,

돌에 걸려 넘어질 듯, 다시 일어나며, 어느새 느슨해진 끈을 다시한번 묶어준다.

끈을 묶으니, 이전보다 훨씬 가벼운 느낌으로, 몸을 추스린다.

하나님과 나를 엮어주는 끈이 느슨하거나, 풀렸을때, 우리는 결국 넘어지거나

부르틀 수밖에 없음을 새삼 깨달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