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편하다.
어른 남자 걸음으로 8분 거리라는 비포장도로가,
계단 하나를 올라가서 다시 두 계단을 내려가야 하는 화장실이,
머리를 조심하고 들어가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야 하는 식당이,
무엇보다 ‘沈黙’이라는 단어가 주는 불편함이
얼마 전 보았던 엔도 슈사쿠의 ‘침묵’ 과 오버랩 되면서 무게를 더한다.
20분씩 세 번의 침묵기도가 이어졌다.
첫 번째 침묵기도, 예수님을 향해 집중해서 들어간다.
오른쪽 가슴과 요즘 좋지 않은 오른쪽 치아에 물리적인 통증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두 번째 침묵기도,
세 번째 침묵기도를 시작하면서 고통이 사라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식사시간…
나전도사님의 살뜰한 보살핌 속에 밥을 기다리는데
인계원 권사님이 차려오신 밥이 먼저 왔다.
나는 이 밥에 담긴 섬김과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안다.
말씀기도로 오후순서가 시작되고
마가복음 4:35-41(풍랑을 고요하게 하신 예수님)속으로 들어간다.
“큰 광풍이 일어나며 물결이 배에 부딪혀 들어와 배에 가득하게 되었더라”
그러나 예수님은 베개를 베고 주무신다.
그날 예수님은 하루 종일
바다에 떠 있는 배에 올라 앉으셔서 바닷가 육지에 앉은 무리들에게
비유를 통해 말씀을 전하셨다.
피곤해 곤히 잠든 예수님…
미친바람이 불어 배에 물이 가득해 금방이라도 뒤집힐 듯하지만
난 곤히 잠든 예수님을 깨울 수 없다.
이번 주 최목사님의 말씀
‘흔들리는 터전, 흔들리지 않는 나라’ 라는 말씀이 떠오른다.
세상이 나를 아무리 흔들어도 예수님과 함께라면 요동치 않으리.
성경에도 잠을 깨운 제자들에게 예수님은
“너희가 어찌하여 믿음이 없느냐”
꾸짖지 않으셨는가!
기도를 이끄셨던 이귀옥 목사님께서 나에게
‘너는 말씀 속이 아니라 말씀 밖으로 나와서 한편의 설교를 썼다.’고 하신다.
부끄럽다.
그리고 다시 시작되는 반복기도
밖에 비가 내린다.
빗소리를 들으며 광풍이 일어 잠겨가는 배 안으로 깊이 깊이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곤히 잠든 예수님을 깨우지 못한다.
함께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을 흔들어 깨우고
그런 제자들을 야단치시는 예수님
“예수님, 저는 예수님 깨우지 말라고 했는데 저 믿음 없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깨웠어요.”
고자질하는 교만한 내가 있다.
부 · 끄 · 럽 · 다.
부끄러운 자신과 맞닥뜨리는 불편함이 침묵 속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