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하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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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교회가 이렇냐..'

'이거 완전 '세계거지박람회' 하는 거잖아.'

'도대체 교회가 왜이래.. 성스러움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잖아.'

'이게 뭐 세계난민봉사단체이지 어디 교회라 할 수 있어?'

'조선 놈들도 못 먹고 못 입고 못 사는 인간들이 수두룩 벅적한데, 하필이면 법적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쫒겨다니는 불법 체류자들을 끌어 모아놓고 봉사한다고 난리들이야.'

'그것도 무슨 날, 무슨 때만 되면

"벌집이 이런 곳이고.. 닭집이 이런 곳이고..연탄리어카도 들어갈 수 없어 낱 장으로 들어나르고 아침이면 공중화장실 앞에 줄서는 동네가 이런 곳이요.." 하는 낙후된 동네에 누추한 인간들을 끌어모아 얼굴 팔 일이 있나? 주접떨 데 없으면 차라리 염불이나 외울 일이지.' 

  내가 처음 갈릴리를 찾던 날, 이국인들에 익숙치 않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 마디로,  종교단체라고 생색내기 위하여 무슨 이색적인 일들을 하고 있는, 남들이 하지 않은 모양새 좋은 일들을 벌여놓고 '봉사'라는 명분으로 교회를 치장하고 홍보하는 것이 아닌가, 교인이라고는 백 여명 남짓하고 경제적으로도 풍족하지 않은 것 같은데..허리 꼬꾸라지게 벌어서 같은 종교인도 아닌, 무슬림이며 불교며 심지어 이름도 생소한 이교도인들, 남루하고 지저분한 유색인들을 떼거지로 모아놓고 닭 튀김 몇 쪽 주고 알약 몇 봉지 주면서, 우리 교회 큰일 한다며 자기 기분에 도취되어 떠들어대는 종교인들 특유의 놀이로만 생각했다.

  이런 나의 생각은 몇 주가 지나지 않아 아주 큰 착오였다는 것을 알았다. 그저 남의 일에 색안경 끼고 보는 세속적인 인간의 눈이었으며, 사돈 논 사면 배아파하는 믿음 없는 족속이었다. 이런 울긋불긋한 마음을 가지고도 지금까지 하느님을 믿는 인간이라 하였던가.. 내 몸에 시궁창물 같은 피가 돌고 고슴도치 가죽 같은 뇌물가지고 주님을 따르는 양이라 하고..구역질나는 속 내음을 냄새 좋은 치약으로 양치질해서 가리고 입술 한 번 떨지 않고 눈가에 잔주름 흘리며 '나 크리스천' 이라고 주접떨었단 말인가..

  내가 처음 대면한 외국인노동자 아니, 이주노동자는 인간이 아니었다. 손등은 터서 버짐 먹은 소가죽처럼 쩍쩍 갈라지고, 손가락은 마디가 터지고, 손끝은 문드러져 손톱의 형체가 변했다.

  모여있는 이주노동자들 거의가 남루한 차림이고, 겹겹이 껴입은 옷에는 구역질나는 냄새가 풍겼다. 우리 발바닥은 아마 그들 손에 비하면 유리알 같으며 얼굴도 터서 검은 얼굴에 흰 잔줄이 거미줄처럼 볼때기에 걸려있다.

"저..아저씨, 한국말 할 줄 알어?"

나는 그들이 무슨 일을 하길래 저토록 손이 엉망일까, 얼굴을 또한 얼마나 닦지 않았으면 저 모양일까 궁금했다.

"쪼금 할 줄 알아요."

나도 웃으며, "그래요, 나도 영어 쬐끔 밖에 할 줄 몰라요."

  나는 주머니에 있는 사탕을 하나씩 나누어주면서 나도 한 알 까서 입에 넣으며, "먹어봐~ 맛있어~"하며 친밀감을 보였다. 그 당시 집사람이 갈릴리 주일학교 유치부를 맡고 있어 나는 아이들과 친해보려고 교회갈 때는 언제나 사탕을 한 주머니씩 넣고 가서는 인사하는 녀석들에게 "아이구 착하구나."하면서 "자, 선물이다."하며 하나씩 주곤 했는데 그럴 때면 막 뛰어가던 녀셕들도 휙 돌아서면서 옆구리에다 대고 "안녕하세요?"하며 인사하고선 손을 내밀었다.

  그 사탕이 이주노동자들과도 이어주었다.

"아저씨, 한국에 온지 얼마나 됐어?"

"일년"

"그런데 한국만 잘 하네, 어더서 왔는데?"

"파키스탄"

"한국에서 사는 데는 어디야?"

"남동공단"

"거기서 무슨 일 하는거야?"

"가죽염색"

"그런데 손이 왜 이래?" 차마 손은 잡지 못하고 손끝으로 가리키면서 웃으니까

"일을 많이많이 해서 그래."

"그래도 손을 깨끗이 씻으면 되잖아."

"물이 차가워 씻어도 안 돼. 추운데 계속 일해서 씻어도 안 돼."

"그러면 장갑 끼고 일하면 되잖아."

"장갑 없어"

"왜, 사장님이 장갑 안 사줘?"

"장갑 끼면 일 빨리빨리 못해."

  그 당시 나는 베어링 대리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베어링을 쓰지 않는 공장이 없듯이. 그래서 납품도 하고 영업도 하려 여러 공장을 다녔는데, 요즘처럼 이주노동자들이 광범위하게 일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몰래몰래 그것도 남이 알까 쉬쉬하며 몇 명씩 숨기다시피 일을 시켰는데, 작업장 안으로 들어가면 한쪽구석에 옆도 돌아보지 않고 일하는 외국인들을 종종 보아왔다. 그럴때면 그저 임금이 싸니까 몇 명씩 단순한 일에만 고용하나보다 했는데, 이들과 단 몇 마다 대화로 나는 '참 해도 너무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뜨거운 물이 없어 찬물에 손발을 닦고 찬물에 세수를 하다보니 추운 날씨에 깨끗이 씻기지 않아 손등은 거북이 등짝이 되고 볼때기엔 거미줄이 늘어진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목욕은 제대로 할 것인가. 목욕탕 가도 한국 사람들한테 혐오감 준다고 들어가지 못하게 하고. 자주자주 목욕탕가면 냄새나지 않을 거 아니냐고 생각하지만, 이들의 근로시간을 하루 평균 열 두 세 시간, 일이 끝나면 목욕탕 문은 담기고 그나마 매주 쉬는 것이 아니라 격주로 쉬거나 그도 아니면 몇 주씩 쉬지 않고 계속해서 일을 하다보니 아예 씻는 것을 잊어버린다.

  내 어릴적 겨울이면 아침에 뜨거운 물 한 솥 데워 여러 식구가 씻는데, 식구가 여럿이다 보니 한 대야 씩 쓰고 나면 늦장부리는 막내에겐 언제나 찬물만 돌아갔다. 학교에 가야 하는 형이며 누나가 먼저요 다음다음 순서 기다리다 보면 찬물 섞은 미지근한 물이거나 아니면 아예 얼음도 채 녹지않은 찬물만 돌아와 고양이 세수를 하곤 했는데, 이러다 손등 터진 아이들은 모두 학교 가지 않은 꼬마들이었다.  어쩌다 목욕하고 묵은 떼 씻는 날은 '손 자랑'하곤 했다. 이들의 손을 보니 그때 생각이 문득 난다.

  병이 들어도 병원 가기를 포기한 이방인들. 훙물스럽고 꾀죄죄한 사람들. 그들을 치료해주고 다친 마음을 달래주고 받지 못한 임금을 받아주고 병들어 죽어가는 이를 입원시키고 이런 일을 생색내기로 교회모양새 좋게꾸미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나는 갈릴리 멤버가 되기 전엔 카톨릭신자였다. 어릴 적부터 다닌 성당이라 하루아침에 바꾸기 쉽지 않은 일이다. 결혼하기 전엔 아내의 종교에 대하여 큰 관심이 없었다. 그저 '남자가 나가는대로 따라오겠지.'했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나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아내는 그렇다처도 손아래 동서가 목사가 아닌가. 그래도 나는 성당을 고집했다. 아내가 다니던 영락교회와 명동성당을 가까워 일요일 아침, 아내를 영락교회에 내려주고선 나는 차에서 기다릴테니 예배드리고 와라."하고선 성당 미사에 참여하곤 했는데, 가끔씩 아내를 위해 교회 예배도 참여했지만 몇 년 동안 마음만은 일요일이면 따로 국밥이었다. 또한 목사 동서는 몇 년 째 우리 부부가 다닐수 있는 교회를 찾아 다녔다. 그래서 내가 그랬다. "이봐요 홍목사, 목사하려면 고집이 그렇게 고래 심줄이 되어야 하냐. 몇 군데 소개해줬으면 됐지. 뭐 그리 고집스럽게 힘들여 가면서 찾아 다니냐. 당신이 우리 집 옆에다 교회를 차려도 나가기 힘들거야."

  그러나 목사 고집이 세서 그런지.. 아니면 하늘의 계시인지.. 갈릴리를 찾아 소개받았고 지금은 그 좋은 갈릴리식구들과 어울려 지낸다.

  누구든지 이들과 한 번만 대화를 해보라. 한 번만 이들과 어울려보라. 너무나 순박하다. 그렇게 힘든 3D업종에서 하루 절반 이상 노동으로 보내고 그렇게 설움을 받아도 미래가 있고 겉모습은 초라해도 그 속에선 인간미가 흘러나온다.

  인간으로, 인간 아닌 이주노동자를, 인간으로 돌보는 갈릴리.

  옆을 지나치면 옷깃이 스칠까봐 두려운, 인간 아닌 짐승 보듯하는 인생들. 그들의 갈라진 곰발바닥 같은 손을 어루만지며 보듬어주는 갈릴리 사람들. 그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주고 그들에게 따뜻한 마음을 나누어주고 그들을 이웃으로 대하여주고 그들을 품으로 보듬어, 무슬림에게 크리스찬의 마음을 보여주고 알라의 얼굴 옆에 예수님의 얼굴을 그려주는 갈릴리 한 사람, 한 사람.

  내가 처음 갈릴리를 알았을 때 그들은 너무나 위대했고 성스러웠다.

  '나도 이들과 같이 될 수 있을까? 나도 저들과 같이 어울려 봤으면.. 머릿속에 고슴도치 가죽을 쓴 나도 갈릴리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저들의 생김새는 나와 다를 것이 없는데.. 저들도 물질이 남아돌아 저렇게 나누어주지는 않을 것 같은데.. 저들은 시간이 남아 일요일마다 저 못난 사람들을 돌보지 않을진데..'

 그래! 그들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딸이요 아들이요. 그들이 바로 크리스찬이다! 내 가진 것 부족하나 조금 떼어서 나누어주고, 내 힘들어도 남은 힘을 나누어주고, 내 삶이 바빠도 시간을 쪼개어 주고, 내 피곤해도 웃음을 남겨주는 갈릴리 크리스찬!

 이들이 있기에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고, 이들이 있기에 하나님은 아직도 이 땅을 보존케 하였으리라.